눈물 머금은 신이 우리를 바라보신다

김 노인은 64세, 중풍으로 누워 수년째 산소호흡기로 연명한다
아내 박씨 62세, 방 하나 얻어 수년째 남편 병수발한다
문밖에 배달 우유가 쌓인 걸 이상히 여긴 이웃이 방문을 열어본다
아내 박씨가 밥숟가락을 입에 문 채 죽어 있고,
김 노인은 눈물을 머금은 채 아내 쪽을 바라보고 있다
구급차가 와서 두 노인을 실어간다
음식물에 기도가 막혀 질식사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도
거동 못해 아내를 구하지 못한,
김 노인은 병원으로 실려가는 도중 숨을 거둔다

아침 신문에서 읽은 ‘지독한 죽음의 참상’이다. 어디선가 일어나는 오늘 우리의 참상이자 내일 우리의 일상이다. 시간은 우리를 ‘거동 못하는’ ‘내일의 어느 날’로 끌고 간다. 늙음보다 더한 질병은 없다지만, 늙음에 병과 가난과 고독이 더해졌을 때 죽음을 압도하는 참사는 다반사가 된다. 이때 죽음은 참상으로부터의 해방이기에 늙음보다 후한 대접을 받기도 한다. 늙음이 죽음을 욕망하는 이유다. 노인이 가까이 있는 것보다 멀리 있는 것을 더 잘 보는 이유이고, 신(神)이 우리를 ‘눈물을 머금고 바라보시’는 이유일 것이다.

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

출처 : http://news.chosun.com/